여행을 할 때면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제일 먼저 내가 묶을 숙소를 찾았다. 미리 예약을 해둔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이지만 숙소 찾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꼭 그때그때 숙소를 찾았다. 그러다보니 가이드북에서 미리 봐둔 숙소에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고, 아예 숙소가 문을 닫고 없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때면 거의 멘붕에 빠지고 마는데 급하게 다른 숙소를 찾느라 진땀을 빼기 일쑤였다.

캔디에 도착해서도 나는 가이드북에서 미리 봐둔 숙소로 가기위해 걷고 있었다. 그러다 한 노인이 예약해둔 숙소가 없다면 내가 추천해줘도 될까?”하고 말을 걸어왔다. 내가 한껏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자 노인은 의심할 것 없어. 나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아.”하고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자기가 가톨릭 신자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재밌고 해서 내가 미리 봐둔 숙소를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거기가 유명하긴 하지만 요즘 가격이 많이 올랐어. 지금은 이 가격에 잘 수 없어. 대신 내가 좋은 곳을 소개해 줄게.”하고 대답했다. 내가 하룻밤에 얼마냐고 물었더니 노인은 그곳 주인이 나랑 좀 친한 사이라서 싸게 해 줄 거야. 하룻밤에 200루피야. 다른 곳에 반뿐이 안 된다고. 나는 가톨릭 신자라 거짓말을 안 해. 한 번 가보지 않을래?”하며 역시나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나를 바라보는 노인의 간절한 눈빛도 그렇고, 가톨릭 신자라는 것으로 믿음을 확인시켜주려는 것도 그렇고 딱히 봐두었던 숙소를 반드시 가야할 이유도 없어서 노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노인은 한 번 가보자는 내 말에 너무도 기뻐하며 또다시 자신은 가톨릭 신자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믿어도 좋다고 하면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노인을 따라가면서 원래 가려던 숙소와 꽤 좋아 보이는 여러 숙소를 지나쳤다. 그리고 노인이 나를 안내한 곳은 숙소라기보다는 개인주택에 가까운 곳이었다. 집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면 작은 마당이 나오고 마당 주변으로는 꽃과 나무가 잘 다듬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당을 가로지르면 단층 주택이 있는데 특별할 것 없는 소담한 모양새였다.

지붕 처마 아래에는 펑크머리를 한 깡마른 노인이 레게 가수가 입을 법한 옷차림을 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를 숙소로 이끈 노인은 펑크머리 노인에게 다가가더니 숙소의 주인이라고 소개를 했다. 낯선 노인을 따라온 200루피짜리 숙소의 주인은 펑크 머리를 하고 레게가수의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펑크머리 노인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일단 방을 보자고 했고 펑크머리 노인은 앞장서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안내 받은 방은 단출했다. 침대와 옷장 그리고 작은 테이블이 전부였고, 방 옆에 세면대와 용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나는 다른 방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펑크머리 노인은 방은 이것 하나뿐이라는 당황스러운 대답을 할 뿐이었다. 내가 말을 않고 두리번거리며 있었더니 나를 데려온 노인이 하루에 200루피라는 것을 애써 강조하며 또다시 자신은 가톨릭 신자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여러 가지로 당황스러웠지만 이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좁은 길을 따라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작은 마당이 꽤나 잘 가꿔져 있어서 맘에 들었고, 숙소로 쓰이는 방은 하나뿐이었지만 그 옆 건물이 펑크머리 노인과 가족이 살고 있어 안전에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낯선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여기까지 온 것은 순전히 내 의지였기에 여기서 묶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는 펑크머리 노인에게 하루에 200루피가 맞는지 확인을 하고 이틀을 묶겠다고 했다. 내가 묶겠다는 말을 하자 제일 기뻐하는 건 펑크머리 노인도 아니고 나를 데려온 노인이었다. 나는 속으로 자기 숙소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뻐하나 싶었다.

첫째 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됐다. 나는 일어나 씻지도 않은 채 처마 밑 의자에 앉아 마당을 쳐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마당이 참 잘 다듬어져 있어서 보기에 꽤 좋았다. 그렇게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노인이 들어서는 게 보였다. 노인은 잘 잤느냐며 숙소는 괜찮은지 물었고 나는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다. 그 후 짧은 적막이 흐르고 노인은 내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뭐냐고 물었다. 노인은 내게 자신이 다리가 아픈데 일도 못하고 해서 병원비가 없어 병원에 가질 못하고 있다며 200루피만 줄 수 없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원래 다른 곳 묶었으면 숙박비가 더 드는데 자신이 이곳을 소개해줘 숙박비를 아꼈으니 200루피만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역시나 자신은 가톨릭 신자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이었다.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200루피가 얼마 되지 않고 또 노인의 말처럼 노인 덕분에 아낀 숙박비이기도 해서 조금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알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인은 역시 자기가 사람을 잘 봤다며 한국 사람은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노인은 병원에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나 역시 구경을 하기 위해 짐을 챙겨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캔디는 우리로 치자면 경주 같은 도시다. 과거의 유적들이 많아 시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 종일 시내를 이 잡듯 돌아다니다가 쉴 겸해서 카페를 찾는 와중에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숙소를 소개해준 노인이었다. 그런데 노인은 스리랑카 내지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한 커플 옆에서 뭔가를 계속 말하며 안내를 하고 있었다. 잠시 멀찍이 서서 행동을 살피니 가이드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역시나 아프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나를 보자 당황해하더니 나에게로 급하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게 옆에 있던 커플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커플은 자기 친구들인데 캔디에 놀러 와서 자기가 도와주는 거라며 해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별 상관이 없었는데 노인이 해명을 하자 상황이 너무 웃기다는 생각을 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냐며 그럼 얼른 친구들에게 가볼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인은 역시나 자기는 가톨릭 신자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커플에게로 돌아갔다.

그 후 캔디를 떠나는 날까지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 200루피를 받아서 볼 일이 끝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날 시내에서 나를 만난 것 때문인지 모르겠다. 가톨릭 신자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그 노인은 아마 오늘도 어떤 여행자에게 다가가 숙소를 찾느냐고 묻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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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66098802 2016.06.17 02:40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5년 전 흑산도와 홍도를 여행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부모님과 함께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갔던 적이 없다. 여름휴가를 계획할 때면 휴가를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오곤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나 부모님이나 그 정도 말로 서로에 대한 예의를 차릴 뿐이었다. 우린 서로 여행을 같이 갈 수 없는 사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던 우리가 이번에 함께 여행을 가게 된 것은 어쩌면 지난 일에 대한 혹시나 하는 기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5년이 지났으니 혹시나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말이다.

처음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난 의례 여행을 같이 가자는 말을 했고 그에 대한 부모님의 대답도 의례 하는 말이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부모님은 오랜만에 그러자며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오셨다. 그 후의 일은 여행지를 찾고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일정을 짜고 준비물을 챙기는 일들이었다. 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고, 부모님께 설명을 해야 했다.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지 뭐가 필요한지 그곳은 어떤 곳인지 등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여행을 했던 3박 4일 동안 우리는 눈치게임을 해야 했다. 나는 부모님의 눈치를 봐야 했고, 부모님은 내 눈치를 봐야했다. 우린 서로의 기분과 상태에 유별나게 관심을 두어야 했다. 나는 부모님의 상태를 보며 이동을 해야 했고, 부모님은 내 눈치를 보며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나는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고 부모님의 먹는 모습을 보며 조마조마 했고, 부모님은 입에 맞지 않더라도 내색 않고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우리는 서로의 그런 모습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에 대해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제가 영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누구나 한계는 있는 법이고 한계를 넘으면 넘치게 돼있다. 결국 우리의 인내심도 서로에 대한 나름의 배려도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예상은 했던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꽤나 늦게 찾아온 폭발이었다. 예상을 했으니 당연히 대비책도 있었다. 뭐든 문제가 생기면 초장에 진압을 해야 한다. 까딱 늦다가는 손 쓸 수 없게 돼버린다. 물론 부모님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넘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넘치면 빨리 넘친 것을 닦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린 서둘러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3박 4일은 지나갔고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우린 서로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했다. 부모님은 내게 여행 동안 안내를 잘 해줘서 고맙다고 했고, 나는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당분간 각자 다니자는 뼈 있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부모님과 함께한 오랜만의 여행을 하면서 나는 ‘혹시’가 ‘역시’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 ‘역시’는 되지 않았다. 물론 문제가 영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여행 내내 서로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편안한 여행은 아니었을 수 있다. 그래도 이정도면 꽤 괜찮은 여행이었던 것 같다. 5년 전 다시는 부모님과 여행을 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깼고, 5년 후 쯤 또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으니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면 자유여행 보다는 패키지여행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진리를 알게 됐으니 이보다 큰 수확은 없다. 그리고 역시 여행은 혼자 다닐 때가 제일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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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새로 시작한다는 구절은 누가 떼어버렸는지

만물이 더욱 새롭다는 구절만 홀로 남아 새해를 기다리네.

일원복시(一元復始) 만상경신(萬象更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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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날 사진조차 찍을 수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날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출처 : http://www.thewayfarermap.com)

여행을 준비하면서 수없이 듣던 증상이었지만 라싸에 도착한 후로 특별한 증상이 없어 안도하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 건강이나 체격과 상관없이 나타나는 증상이라 걱정했지만 나는 해당이 없나보다 했다. 그런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해발 5,000미터가 가까워오자 찾아온 고산증은 점점 증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옷을 세 겹은 껴입었음에도 더해가는 추위와 쥐어짜는 듯한 두통 그리고 속을 뒤집어 놓는 구토 증세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차창 밖으로 고대해 마지않던 하늘호수가 보이고 있었지만 감상할 정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 후 하늘호수에 도착했다. 류시화 시인의 책을 통해 알게 된 하늘호수다. 학창시절 언젠가 갈 날이 오지 않을까 고대했던 곳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상상했었는지 모른다. 이곳에 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처럼 호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차에서 내려 호수를 한 번 훑어본 후 염호라는 말에 한 모금 목을 적셔보고는 이내 숙소에 몸을 누이고 말았다. 호수고 뭐고 내 몸이 죽겠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숙소에 누워있다 버터차를 좀 마셔보라는 권유에 몇 모금 마시고는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속이 메스꺼워 더 마시기가 힘들었다. 내가 이 고생을 하려고 여기에 왔나 싶었다. 해가 점점 기울기 시작하자 추위는 한층 심해졌다. 숙소는 난방도 되지 않아 두꺼운 이불 몇 겹을 겹쳐 온몸을 감쌌지만 오한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때 같은 방을 쓰던 일행이 나와 보라고 나를 불렀다. 그냥 쉬겠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이불로 몸을 싸매고 그를 따라나섰다.

이미 밖은 새까만 어둠에 잠식되어 내 발조차 보이지 않는 짙은 밤이었다. 그런데 빛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하늘이 너무나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조차 삼킬 수 없었는지 온 하늘이 반짝거렸다. 아마 나는 그때 처음 탄성을 질렀던 것 같다. 고산증으로 신음하던 몸도 그때만큼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은빛 별들의 향연은 내가 봐왔던 그런 밤하늘이 아니었다. 별자리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이었고 내 별과 네 별을 가리키지 못 할 만큼의 별이었다. 나는 그대로 이불로 몸을 감싼 채 땅바닥에 누워버렸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거대한 스크린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이때만큼은 추위도 두통도 구토도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에 보면 당신이 만약 아름다운 별들 아래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모두 잠든 시간 동안 고독과 침묵 가운데 신비로운 세상이 새로이 눈을 뜬다는 걸 아실 겁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하늘호수에서의 밤하늘이 그랬다.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별과 그 별들 사이로 흐르는 우윳빛 물줄기는 신비롭기만 했다.

황홀한 시간은 언제나 짧다. 잠을 청하기 위해 들어온 숙소는 다시 나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고통이 다시 시작됐지만 나는 신음을 흘릴 수 없었다. 행여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잠에서 깰 것 같아서였다. 추위와 고통에 잠은 오질 않고 정신은 더없이 또렷했다. 그때 숙소 벽 너머 다른 방에서 적막을 깨트리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사방팔방에서 신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다들 눈치를 보며 속으로 신음을 삼켰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날 밤엔 너나할 것 없이 밤새도록 신음을 흘리며 긴 밤을 버텨내야 했다. 그렇게 신음을 흘리며 밤을 지세면서도 머리맡 천정 위에서 빛나고 있을 그 별들 생각에 외롭지는 않았다.


Posted by 베르베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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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는다’‘부패한다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따라서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반한 현상이다. 그런데도 절대 부패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것이 돈이다. 돈의 그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작아도 진짜인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큰 이슈 중 하나는 노동개혁이다. 사실 이게 개혁이라기보다는 개악이지만 정부는 연일 다방면을 통해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고 우리의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정말 노동시장을 개혁하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고 우리의 경쟁력이 높아질까?

미래에 대한 가정이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 정말 정부 말처럼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지도 않고 우리의 경쟁력이 높아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노동시장 개혁은 대기업을 소유한 재벌들의 배만 불려 줄 거라고 의심한다. 왜냐고? 와타나베 이타루의 설명이 그런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직장을 다니던 이타루는 시골에서 돈에 휘둘리지 않는 정직한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타루가 말하는 돈에 의해 부정하게 굴러가는 세상의 중심에는 사용자가 있다. 무슨 말인지 이타루의 설명을 인용해 보겠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회사에 속해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다. 월급은 우리가 회사에 제공한 노동력의 대가다. 그럼 노동력과 월급은 동등한 가치를 지닐까? 아니다. 사용자는 이득을 위해 노동력의 대가인 월급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나아가 기술이 발전하면 그만큼 노동에 필요한 노동력이 줄어든다. 하지만 역시나 그것은 이론적인 이야기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는 9시간 이상 일을 하며 자주 야근을 한다. 기술이 발전했는데 노동에 필요한 노동력의 양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난다. 역시 사용자는 더 많은 이득을 위해 우리의 노동력을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자본이다. 자본을 갖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자본주의 안에서 갑이 될지 을이 될지를 결정한다. 갑은 언제나 더 많은 이득을 원한다. 갑이 더 많은 이득을 원할수록 을은 더 많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 메커니즘은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마찬가지다. 자본을 가진 사용자는 언제나 더 많은 이득을 원하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우리의 처지가 나아진다는 말이 아니다.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용자 즉 재벌의 이득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노동력의 대가를 덜 주고, 좀 더 쉬운 해고를 하고, 좀 더 유리한 사용조건을 만드는 것이 노동개혁의 목적이다.

이타루는 자본에 의해 부정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 시골로 갔다. 그리고 정직하게 돈을 벌기 위해 천연균을 사용한 빵을 만들고 있다. 나아가 직원들에게는 그들이 제공한 노동력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그가 실행하고 있는 것들이 세상에 어떤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그의 빵집은 너무 작다. 그러나 그는 진짜다. 돈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썩고 부패하는 곳이 바로 이타루가 운영하고 있는 빵집이다.

좀 더 많은 돈을 축적하는 썩지 않는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한다. 푸르른 나뭇잎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듯 돈도 순환한다면 자본주의라는 세상은 모두가 부자가 되는 유토피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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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5.11.01 19:0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원래는 기술력이 좋아질수록 노동시간이 줄어드는게 자연스러운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제가 보기에는 예전에는 한 사람이 한 분야의 일만 했다면, 요즘에는 여러명 뽑을 일을 한명만 뽑아서 다방면으로 일을 시켜서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저만 해도 회사에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입사했는데, 웹퍼블리싱만 하는게 아니라 온갖 잡일, 서버 구축, 온라인 마케팅, 심지어는 쇼핑몰에 상품 업로드 하는 일까지 다 하거든요. 물론 저 말고 제가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는 직원이 전혀 없어서 누구한테 배우는건 꿈도 꾸지 못하구요.

    • 베르베르조 2015.11.01 19:2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책에서 말하는 것 중 다른 하나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가 발전할수록 노동자는 단순업무를 하게 된다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데 데려다 노동을 시킬 수 있게 되고 자연스레 노동자의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는 거죠.

  2. 2018.02.25 15:25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